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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사회와 역사 관련

조선시대 외국어 달인들, 역관의 연봉과 중계무역 비밀

by 코스티COSTI 2024. 12. 22.

1. 시작하며

조선시대에 영어? 프랑스어? 그런 건 아니지만, 이 시대에도 외국어 천재들이 있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이들은 단순히 외국어를 잘하는 게 아니라, 글로벌 경제 감각까지 갖춘 인재들이었습니다. 바로 조선의 '역관', 통역사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 역관들이 단순한 월급쟁이가 아니었다는 사실,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오늘은 그들의 숨겨진 경제 비밀을 낱낱이 파헤쳐 봅니다.

 

2. 조선시대 외국어 교육과 역관의 등장

조선시대 이전에도 외국어 공부는 꽤 중요했어요. 예를 들어 신라시대 귀족 자제들은 당나라 유학이 필수 코스였죠. 그러나 통역이라는 직업이 본격적으로 생긴 건 고려시대부터였습니다. 당시에는 외국어를 잘 모르면 문서를 빼돌리거나 의도적으로 통역을 왜곡하는 일이 잦았다고 해요. 그래서 고려 충렬왕 때 동문관이라는 외국어 학교가 설립되었고, 이 전통은 조선시대의 사역원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역원은 말 그대로 외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이었어요. 학생들은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등 당시 국제 교류에 필요한 언어들을 배웠습니다. 흥미롭게도 일본어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몽골어와 위구르어 같은 추가 언어도 배웠다고 하니, 요즘으로 치면 트리플 전공 같은 느낌이었겠죠.

 

3. 역관의 연봉? 중계무역으로 돈을 번 비결

역관들은 단순히 통역만 한 게 아니었어요. 이들은 출장을 가면서 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었죠. 예를 들어, 조정에서는 사신단에 포함된 역관들에게 출장비 대신 인삼 80근을 지급했어요. 인삼은 중국에서 아주 고급 사치품으로 취급됐기 때문에, 이를 팔아서 꽤 큰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번 돈으로 중국에서 사치품을 구입해 국내로 가져오거나 일본에 팔면 두세 배 이상의 이윤을 남길 수 있었어요. 요즘으로 치면 해외 직구를 해서 국내에서 되팔아 큰돈을 버는 사업 같은 거죠. 이런 식으로 역관들은 단순한 공무원이 아니라, 자신만의 경제권을 가진 부자들이 될 수 있었어요.

 

4. 사역원, 조선시대의 외국어 대학

사역원은 단순한 외국어 학원이 아니었어요. 여기는 국립 외국어 대학 겸 외교관 훈련소 같은 곳이었죠. 입학도 굉장히 까다로웠는데, 현직 역관의 추천서를 받아야 했고, 집안 배경까지 심사를 받았어요. 말 그대로 귀한 집 자식만 갈 수 있는 곳이었죠.

학생들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엄청난 양의 공부를 해야 했어요. 외국어 교재를 통째로 암기하고, 실전 회화를 연습하며, 주기적으로 시험을 쳐야 했죠. 시험에서 떨어지면? 다시 공부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역원 졸업생들은 그야말로 실력으로 인정받은 엘리트들이었어요.

 

5. 역관의 역할과 한계

역관들은 단순히 외교를 돕는 통역사에 그치지 않았어요. 그들은 전쟁 시에는 외국의 원조를 끌어오기도 하고, 무역의 중개자로서 경제의 중심에 서기도 했어요. 하지만 신분 제도라는 장벽 때문에 그들의 능력이 과소평가되는 일도 많았죠. 조선 후기로 가면서 신분 개혁과 근대화를 외치며 사회 변화에 앞장섰던 것도 역관들이었어요.

 

6. 마치며

조선시대 역관들은 단순히 외국어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적, 외교적 역할까지 담당한 다재다능한 인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단순한 공무원의 경계를 넘어,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은 영감을 줍니다. 여러분은 어떤 외국어를 배우고 싶으신가요? 조선시대 역관들처럼 글로벌 인재로 거듭나는 건 어떨까요?

 

 

 

#조선시대 #역관 #외국어능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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