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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는 왜 당나라에 무너졌나? 국제전 시각에서 다시 보는 멸망 원인

by 코스티COSTI 2025. 7. 11.

시작하며

고구려는 삼국 중 최강의 국력이 있었음에도 통일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단순한 전쟁 패배가 아닌 외교 전략 실패와 국제질서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데 있었다.

 

1. 고구려가 강했음에도 무너진 이유는 단순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승리했지만, 속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고구려는 산악 지형을 활용한 강력한 방어 전략으로 유명했다. 산성을 요새화하고, 침략이 있을 때마다 백성들이 성 안으로 대피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당나라는 이 방식을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았다. 대신 소규모 부대의 빈번한 침공으로 고구려 백성들이 농사를 못 짓게 만들고, 생활 기반을 무너뜨리는 전략을 택했다.

이 전략은 당장의 군사 승리보다 백성들의 피로도와 불만을 축적하는 심리전이었다. 결과적으로 고구려는 ‘이기는 전쟁’을 이어갔지만, ‘국가 전체의 체력’은 점점 고갈되어 갔다.

 

2. 고구려가 무너지기까지 있었던 일들

내가 이 내용을 정리하며 느꼈던 건, ‘전쟁은 총칼보다 전략이 무섭다’는 점이었다.

  • 당나라의 지속적인 심리전
    정면 승부 대신 농경 방해 전략을 사용해 백성들의 생활 기반을 무너뜨림
    매년 반복된 소규모 침공으로 농토 황폐화 → 백성 불만 증가
  • 고구려의 방어 성공, 그러나 지속 가능성 부족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전쟁터가 늘 고구려 땅이었기에 내상은 심각
    농업 기반의 붕괴는 장기적인 국력 약화를 불러옴
  • 당나라-신라 연합의 형성
    신라는 당나라에 고구려 대신 백제를 먼저 공격해달라 요청
    당나라는 처음에는 무시하다가 전략적으로 신라의 입장을 수용
    결국 백제 멸망(660년), 고구려 멸망(668년)으로 이어짐
  • 형제 간 권력 다툼, 그러나 본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연개소문의 사망 이후 세 아들 간의 분열
    장남 남생이 지방 순행 중 동생들이 쿠데타 → 남생이 당나라에 투항
    하지만 분열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전쟁의 패배가 분열을 불러온 것이었다.

 

3. ‘지배층의 분열’이 고구려 멸망의 핵심일까?

쉽게 보이는 원인일수록, 놓치는 본질이 있다.

고구려 멸망 원인을 지배층의 내분으로만 설명하는 건 흔한 분석이다. 그러나 이 시각에는 결정적인 맹점이 있다.

전쟁에서 이길 때는 내부 분열이 드러나지 않는다. 패배하기 시작하면서 내부 갈등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분열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오히려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 모든 권력이 연개소문에게 집중된 구조
  • 연개소문 사망 이후 권력 공백에 따른 체제 불안정
  • 외교 정책이 정권 유지 수단으로 전락한 현실

당나라에 대한 일관된 강경 노선이 실은 ‘국익’보다 ‘정권 안정’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 역시 구조적인 문제였다.

 

4. 국제 질서에 대한 대응 실패, 고구려의 가장 큰 오판

삼국 간의 전쟁이 아닌, 동아시아 전체의 국제전이었다.

고구려는 백제·신라와의 삼국전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지만, 전체 판도를 흔드는 건 수·당 제국의 존재였다.

고구려가 동아시아의 국제전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자국 중심의 전통적인 외교와 방어에만 의존했다는 것이 결정적인 패착이었다.

  • 수·당의 통일로 국제질서가 재편
    고구려는 북방 유목 세력과 중국 왕조의 양면 전선을 유지해야 했다
    남쪽의 신라와도 군사적 긴장을 유지해야 했기에 삼중 압박에 시달림
  • 신라의 전략적 외교 승리
    신라는 ‘작은 나라’였지만 국제 정세를 읽고 현실적 선택을 했다
    당나라와의 연합은 위험한 도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삼국 통일을 이룸
  • 고구려의 고립
    연개소문 체제 이후 외교 유연성이 사라짐
    내정 불안, 외교 고립, 군사적 소모가 복합적으로 작용

 

5. 지금 우리의 외교와 전략에도 시사점이 있다

역사를 단순히 해석하지 말고, 지금을 비추는 거울로 삼아야 한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유를 단순히 ‘형제의 분열’이나 ‘신라의 배신’으로 보는 시각은 역사 전체를 부분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 대입해 보자면, 단결만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다.

국제 질서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유연한 외교 전략을 펼치며, 내정의 안정과 외교가 철저히 분리된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 이게 지금 우리에게 더 절실한 교훈이다.

 

마치며

고구려는 확실히 강한 나라였다. 하지만 단순한 힘만으로는 국제 질서를 이기지 못했다. 당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외교를 정권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삼았던 선택이 결국 무너지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내분이 아닌 ‘정세를 읽는 능력’일 것이다. 과거의 교훈은 미래를 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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