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흔들린다는 소식이 처음 들려왔을 때,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듯 ‘이제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가 득을 보겠구나’ 싶었다. 한국 시장에서 쿠팡이 차지한 존재감이 워낙 컸으니, 불신이 번지면 그 틈을 노릴 플랫폼은 뻔해 보였다. 그런데 결과는 정반대였다.
쿠팡을 떠난 이용자들은 중국계 시커머스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의 수치가 동시에 추락했다. 지난달 말 기준, 알리익스프레스의 월간 이용자는 440만 명에서 360만 명대로 떨어졌고 결제 건수는 무려 30% 이상 줄었다. 단순히 방문자가 아니라 ‘결제’가 줄었다는 건 의미가 다르다. 아직 앱을 삭제하진 않았지만, 버튼을 누를 자신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테무 역시 상황이 비슷했다. 이용자는 감소했고 결제 건수는 17% 넘게 하락했다. 가파르게 성장하던 엔진이 멈춘 셈이다.
소비자들의 ‘이성적인 불신’이 시작된 이유
쿠팡의 악재가 터졌을 때, 그 사건의 중심에 중국 국적 전직 직원이 있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보안’과 ‘중국’이라는 단어가 붙는 순간, 소비자들은 본능적으로 경계했다. 쿠팡을 떠나는 이유가 개인 정보 유출이라면, 더 위험하다고 느끼는 곳으로 옮길 리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싸다고 다 사지 않는다. ‘내 데이터가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 어떤 초저가도 의미가 없다. 실제로 알리와 테무는 예전에도 보안 문제로 과징금을 맞은 전력이 있다. 알리바바 19억 원, 테무 13억 원. 그 기록은 소비자 기억 속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반응을 들었다. 한 친구는 “중국 앱에서 산 물건 결제 내역이 며칠 뒤에 이상한 해외 결제로 이어졌던 적이 있다”며 다시는 로그인조차 안 한다고 했다. 이런 개인적 경험이 모여 신뢰의 벽을 높였다.
싸구려의 끝은 결국 ‘불안함’이었다
서울시가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발표한 자료를 보며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에서 판매된 화장품·주방용품 10개를 검사했더니, 전부 짝퉁이었다는 내용이었다. 단순히 정품이 아니라서 문제가 아니라, 일부 제품에선 피부염을 유발할 수 있는 독성 물질이 검출됐다.
가격이 싸다는 건 누구나 안다. 하지만 그 싼 이유가 ‘검증되지 않은 위험’ 때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피부에 바르고 입에 닿는 제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나도 예전에 알리에서 충전 케이블과 블루투스 이어폰을 몇 번 사봤는데, 둘 다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케이블은 금세 끊어졌고 이어폰은 전파 간섭이 심했다. 그 이후로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게다가 시커머스 앱 특유의 복잡한 인터페이스, 경품 팝업, 끊임없이 떠오르는 쿠폰 알림들. 처음엔 게임처럼 재미있다가 어느 순간 피로감으로 바뀐다. 쇼핑은 원래 간단해야 하는데, 중국 플랫폼은 그 본질을 잊은 듯했다.
싸움의 승자는 결국 ‘검증된 국내 플랫폼’이었다
쿠팡 사태로 흔들린 100만 명의 쇼핑 이용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데이터는 명확했다. 네이버와 11번가였다.
네이버플러스스토어의 월 이용자가 11% 넘게 뛰었고, 쇼핑 앱 신규 설치 1위도 차지했다. ‘검색부터 결제까지 한 번에 가능한 익숙함’이 사람들을 다시 붙잡았다. 무엇보다 신선식품 배송 문제를 컬리와 손잡으며 해결한 전략이 주효했다.
11번가도 눈에 띄게 달라졌다. 주간 이용자 400만 명을 넘겼고 결제 건수는 37% 급증했다. 빠른배송 신규 고객은 작년 대비 230% 늘었다.
지마켓, 쓱닷컴도 함께 반사이익을 봤다. 소비자들은 조금 비싸도 믿을 수 있는 곳을 택했다.
나는 이 흐름이 단순한 일시적 반응이 아니라 ‘신뢰 중심 시장으로의 회귀’라고 본다. 온라인 쇼핑의 본질은 결국 ‘안심’이다. 정보가 안전하고, 품질이 예측 가능하며,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질 주체가 있는 구조. 쿠팡도, 중국 시커머스도 그 부분에서 균열이 갔다.
중국 플랫폼의 한국 공략, 사실상 멈추다
지금 알리와 테무 내부는 초상집 분위기라고 한다. 알리익스프레스가 준비했던 ‘알리프레시’ 프로젝트는 석 달 만에 사실상 중단됐다. 한국의 까다로운 기준을 ‘초저가’ 하나로 뚫으려던 시도가 좌초된 셈이다.
테무도 김포 물류센터 계약을 해지하며 발을 뺐다. 한국 진출 8개월 만에 짐을 싸는 모습은, 야심 찬 시작에 비해 너무 허무하다. 늦게나마 인력을 충원하고 약관을 손보는 움직임이 있지만 이미 소비자의 마음은 떠났다.
나는 이런 상황을 보며 한 가지 교훈을 느꼈다. ‘싸다’는 건 시장 초기에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자극제일 뿐, 장기적으로 신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소비자는 점점 더 똑똑해지고, ‘가성비’보다 ‘안정감’을 원한다.
지금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은 단순한 가격 경쟁의 시대를 벗어나고 있다. 누가 더 안전한 데이터를 보장하느냐, 누가 더 믿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느냐가 새로운 승부처가 됐다.
나는 여전히 쿠팡을 쓴다. 하지만 예전보다 더 자주 네이버 스토어나 11번가를 병행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혹시 모를 불안감’ 때문이다.
이제 필승 전략은 최저가가 아니다.
‘신뢰’다.
이 단어 하나가 향후 몇 년간 한국 온라인 쇼핑의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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