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서 이마트보다 싸던 위스키, 알고 보니 이런 이유였다
며칠 전, 집 근처 편의점 앞에 걸린 현수막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발렌타인 30년 부럽지 않다.”
문구만 보면 농담 같지만, 밑에 붙은 가격표를 보니 조금 진지해졌다.
그란츠 트리플우드 1L가 19,900원. 이마트에서 같은 제품 700ml가 14,800원이니 100ml당 계산해 보면 편의점이 오히려 싸다.
사장님이 애주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매장 한쪽엔 팩 사케부터 위스키까지 줄지어 있었고, 현수막 아래엔 “위스키 1,000병 넘게 마신 사장님께 문의”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 정도면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그래서 그란츠와 컨시에르 두 병을 들고 나왔고, 집으로 가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2만원도 안 되는 위스키가 가능한 구조가 뭐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은 ‘싼 위스키의 논리’
우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술들은 진짜 위스키다.
병 라벨에는 ‘Blended Scotch Whisky’라고 또렷하게 적혀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만든 원액 100%, 다만 핵심은 그 안에 들어 있는 ‘그레인 위스키’ 비율이다.
몰트 위스키가 순수 맥아로 단식 증류된 ‘손맛형 술’이라면, 그레인 위스키는 옥수수·호밀 등 곡물을 써서 연속식 증류기로 뽑아낸 ‘대량생산형 술’이다.
이 연속식 증류기는 멈추지 않는다. 워시(발효액)가 계속 들어오고, 술도 계속 나온다.
공장을 세우지 않고 가동하니 당연히 에너지 효율도 좋다.
그 결과, 몰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많은 양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섞으면 블렌디드 위스키가 된다.
스코틀랜드 법상 몰트와 그레인의 비율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래서 1%만 몰트를 넣어도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부를 수 있다.
대부분의 저가형 위스키는 몰트 20~30%, 그레인 70~80% 비율이라 한다.
결국 첫 번째 이유는 간단했다. 몰트보다 훨씬 싼 원액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숙성통, 세금, 그리고 한국만의 구조
두 번째 이유는 숙성이다.
스카치 위스키는 법적으로 최소 3년 이상 숙성해야 하지만, 이 구간이 바로 저가형 위스키의 가격 포인트다.
대부분 3~5년 사이 짧은 숙성으로 끝내고, 그마저도 여러 번 재사용한 리필 캐스크(오크통)로 원가를 줄인다.
여기에 ‘규모의 경제’가 더해진다.
그란츠를 만드는 회사는 글렌피딕, 발베니를 소유한 대형 위스키 메이커이고, 블랙앤화이트는 조니워커와 기네스를 갖고 있는 글로벌 그룹에서 나온다.
이런 대형 회사들은 원재료, 통, 병, 포장까지 대량구매가 가능하다.
그래서 단가를 낮춰도 수익이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의 세금 구조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한국은 위스키에 ‘종가세’를 매긴다. 즉, 가격이 낮으면 세금도 낮아지는 구조다.
반면 일본이나 미국은 ‘종량세’로, 술의 양에 따라 세금이 붙는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저렴한 술일수록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게 붙어, 외국보다 싸게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란츠 1L가 한국에서 19,900원인데,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환율 기준 3만원을 넘는다.
이건 단순한 환율 차가 아니라 세금 체계의 차이다.
직접 마셔보니 드러난 차이들
이론은 이쯤으로 하고, 실제로 2만원 미만 위스키 아홉 가지를 마셔봤다.
그중 컨시에르는 향료가 들어간 술이라 제외하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남은 여덟 가지를 비교했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 그란츠와 벨즈가 통과했다.
거친 듯하지만 밸런스가 좋고, 하이볼용으로도 괜찮았다.
두 번째 라운드에서는 칼라일과 존바 리저브가 남았다.
칼라일은 몰트 함량이 높아서 그런지 향이 묵직했고, 존바는 스모키한 피트 향이 살짝 느껴지는 게 의외로 매력적이었다.
결승에서 네 병을 다시 마셨는데, 1등은 존바 리저브.
짭짤하면서 스모키한 맛이 오래 남았다.
공동 2위는 그란츠와 칼라일, 4위는 벨즈였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격 대비’ 평가다.
니트(스트레이트)로는 다소 거칠지만, 온더락이나 하이볼에서는 성격이 달라진다.
어떤 상황에 어떤 술이 맞았나
온더락으로는 존바가 제일 괜찮았다.
바닐라 풍미가 부드럽게 올라오고, 끝맛이 깔끔했다.
그란츠는 무난했지만 조금 심심했고, 칼라일은 의외로 알코올이 강하게 치고 들어와서 밸런스가 무너졌다.
하이볼에서는 순위가 바뀐다.
그란츠는 전천후, 어디에 섞어도 잘 어울린다.
칼라일은 단맛과 오크향이 은근하게 남아서 가장 좋았다.
존바는 약간 짭짤한 느낌이 있어 토닉워터로 섞을 때가 더 낫다.
- 하이볼용이라면 칼라일
- 온더락이라면 존바 리저브
- 무난하게 두루두루 쓸 거라면 그란츠 트리플우드
참고로 3만원대 위스키 중에서는 듀어스가 여전히 ‘내 기준 가성비 1위’였다.
술병의 줄어든 양이 그걸 증명한다.
결국엔 구조와 선택의 문제였다
이 싸고 맛있는 위스키들의 비밀은 복잡하지 않았다.
그레인 원액, 짧은 숙성, 대량생산, 그리고 종가세 구조.
이 네 가지가 겹치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었다.
사진으로 보면 병이 다 비슷비슷해도, 마셔보면 각자 개성이 뚜렷했다.
결국 중요한 건 ‘어떤 방식으로 즐기느냐’였다.
돌아보면 이건 단순히 위스키 이야기가 아니라, 가격 뒤에 숨은 구조를 이해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꽤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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