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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및 부동산/부동산 관련

고창 가볼 만했던 황윤석 도서관, 전통을 닮은 도시의 거실

by 코스티COSTI 2026. 2. 23.

시작하며

고창에 종묘를 닮은 긴 목구조 도서관이 생겼다고 해서 시간을 내어 내려가 보았다. 이름은 고창 황윤석 도서관이다. 조선 시대 실학자 황윤석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고, 설계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겉모습은 전통 목조건축을 떠올리게 하고,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공간 구성이 펼쳐진다. 건축을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궁금해할 만한 장소이다.

나는 예전에 부동산 중개 일을 했던 경험이 있어 공간이 지역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관심이 많다. 이 도서관은 단순한 문화시설을 넘어, 도시의 분위기를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1. 종묘에서 출발한 92m 길이의 도서관

이 건물의 첫인상은 ‘길다’는 것이다. 전통 건축 중 가장 상징적인 건물로 꼽히는 종묘를 떠올리게 하는 긴 열주 구조 때문이다.

(1) 왜 하필 종묘였을까

종묘는 단일 목조건물로는 세계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긴 건물이다. 이 도서관은 약 92m 길이로 설계되어, 종묘보다는 짧지만 충분히 인상적인 수평성을 보여준다.

① 가로로 길게 뻗은 이유

  • 남향으로 긴 면을 두어 자연채광을 최대한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 단층 전통 건축의 비례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의도이다.
  • 고창의 평온한 주택가와 조화를 이루기 위해 수평선을 강조했다.

② 지붕을 일부만 낮춘 선택

  • 2층 규모이지만 전통 건축처럼 지붕 비율을 크게 보이게 했다.
  • 한쪽 처마를 내려 비례를 조정했고, 그 결과 멀리서 보면 단층처럼 보이는 착시가 생긴다.
  • 기와 대신 차콜 컬러의 금속 지붕을 사용해 현대적이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냈다.

겉에서 보면 목조건물의 연속된 기둥과 박공지붕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주변 주택들 역시 박공지붕이 많아서 이질감이 크지 않다. 랜드마크이면서도 동네 풍경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2.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입구는 코너에 있다. 낮은 콘크리트 벽 사이로 들어가면 갑자기 높은 목구조 공간이 열린다. 이 순간이 이 건물의 핵심이다.

(1) 대각선 책장, 이른바 ‘북마운틴’

직사각형 건물 안에 대각선으로 거대한 책장이 놓여 있다. 이 책장이 공간을 두 개의 삼각형으로 나눈다.

① 왜 대각선이었을까

  • 가장 긴 책장을 만들기 위한 선택이다.
  • 박공지붕과 만나면서 산처럼 솟은 단면을 만들어낸다.
  • 공간이 실제보다 더 깊어 보이는 효과를 준다.

② 빛이 다른 두 구역

  • 한쪽은 창이 높고 밝다.
  • 다른 쪽은 창이 낮아 상대적으로 차분하다.
  • 이용자가 빛의 양을 선택해 자리를 고를 수 있다.

도서관에 가면 자리를 고르는 시간이 은근히 길다. 이곳은 그 선택의 폭이 넓다. 밝은 자리, 낮은 천장 아래 아늑한 자리, 창가 자리, 복층을 내려다보는 자리 등 공간이 끊임없이 변주된다.

 

(2) 나무 구조가 만들어내는 분위기

이 목구조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다. 구조체이면서 동시에 공간을 나누는 장치이다.

① 기둥이 만드는 개인 공간

  • 기둥 폭이 넓어 자연스럽게 작은 존이 형성된다.
  • 책상을 두면 양옆이 가려져 혼자만의 공간이 된다.
  • 창을 바라보는 자리와 안쪽을 향한 자리가 구분된다.

② 건식 공법이 준 정밀함

  • 목재는 공장에서 가공해 현장에서 조립했다.
  • 밀리미터 단위 정밀도가 가능하다.
  • 지방 현장에서도 품질 편차를 줄일 수 있다.

이 부분은 현장을 여러 번 다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철근콘크리트 현장은 숙련도에 따라 마감 차이가 꽤 난다. 반면 건식 공법은 완성도가 일정하게 나온다. 공공건축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방식이다.

 

3. 지하와 선큰가든, 그리고 동네와의 관계

이 도서관은 지하 1층까지 이어진다. 대각선 책장을 따라 내려가면 강당과 다목적실이 있다. 외부로는 선큰가든이 연결된다.

(1) 선큰가든이 만든 완충 공간

① 도로와의 거리감 확보

  • 인도보다 살짝 낮은 레벨을 둔다.
  • 가로수와 조경이 한 겹 더 생긴다.
  • 실내에서 차가 직접 보이지 않는다.

② 아이들을 위한 벽

  • 선큰 벽면을 지역 아이들의 타일 작업으로 채우려는 구상이 있었다.
  • 어릴 때의 기억이 건물과 연결되면 재방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공공건축은 ‘누가 계속 쓰느냐’가 중요하다. 어린 시절 자주 드나든 공간은 성인이 되어서도 다시 찾게 된다.

 

4. 요즘 도서관은 왜 ‘도시의 거실’이 되는가

과거 도서관은 정보를 얻는 공간이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정보가 온라인에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여전히 도서관을 찾을까.

2024년 국제도서관연맹(IFLA) 발표 자료에 따르면, 공공도서관의 방문 이유 중 ‘학습’보다 ‘머무름과 커뮤니티 활동’ 비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단순 열람을 넘어 사회적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1) 돈을 내지 않고 머무를 수 있는 공간

① 도시에서 드문 실내 공공공간

  • 카페는 음료를 사야 한다.
  • 상업시설은 소비를 전제로 한다.
  • 도서관은 체류 자체에 비용이 없다.

② 세대가 섞이는 장소

  • 어린이실, 청소년 공간, 일반 열람 공간이 한 건물 안에 있다.
  • 각자 다른 목적이지만 느슨하게 공존한다.
  • 이것이 도시 공동체의 기본 단위가 된다.

이곳은 밤 늦게까지 운영한다. 퇴근 후 들러 조용히 앉아 있기 좋다. 조명도 직접광보다는 스탠드 중심이라 눈이 편안하다. 전체 공간은 은은하고, 손 닿는 자리만 밝다. 나는 이런 조도 배치를 선호한다.

 

5. 내가 꼽은 세 가지 자리

(1) 낮은 지붕 아래 북마운틴이 보이는 자리

① 위아래 레벨이 겹쳐 보인다

  • 대각선 책장과 낮은 지붕이 교차한다.
  • 공간이 압축되며 집중이 잘 된다.

 

(2) 지하에서 올려다보는 시점

① 목구조가 겹쳐 보인다

  • 기둥이 연속적으로 오버랩된다.
  • 외부 풍경은 가려지고 구조만 남는다.

 

(3) 입구를 돌아 처음 마주하는 장면

① 공간의 성격이 한눈에 드러난다

  • 열주, 천창, 삼각형 평면이 동시에 보인다.
  • 전통과 현대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밖에서는 전통 목조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에서는 삼각형과 대각선이 지배하는 현대적 공간이 펼쳐진다. 이 ‘반전’이 이 건물의 가장 큰 매력이다.

 

마치며

고창 황윤석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이 아니다. 전통 건축의 수평성과 현대적 공간 분할을 동시에 경험하게 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네 주민 누구나 부담 없이 앉아 있을 수 있는 도시의 거실이다.

광주에서 40분 거리라면 주말 오후에 내려가 한두 시간 머물러볼 만하다.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다. 자리를 옮겨 다니며 공간의 변화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건축이 도시를 어떻게 바꾸는지 궁금하다면, 이곳은 한 번쯤 직접 걸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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