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광화문 두손갤러리에서 열린 장윤규 개인전은 '미로'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전시였다. 단순한 공간이 아닌, 인간 군상과 감정, 시간과 구조가 뒤엉킨 하나의 세계를 통째로 걸은 느낌이다.
1. 이 전시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첫 감정
“이게 뭐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화요일 오후, 갑작스럽게 쏟아진 스콜 같은 비 속에서 도착한 두손갤러리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평소보다 혼잡했던 입구를 지나 첫 공간에 들어서자마자, 빼곡히 채워진 아크릴 구조물들이 눈앞을 가득 메웠다.
처음 든 생각은 하나였다.
“작가님,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만드신 거죠?”
작품 하나하나에 담긴 디테일과 질서, 질서 속의 무질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어디서부터 봐야 하지?’라는 감정을 자아낸다. 작은 조형물처럼 보이던 것들도 가까이 가면 인간 형상이 수백, 수천 겹으로 쌓여 있다.
2. 작품의 흐름을 따라, 미로처럼 걸어본 전시 공간
전시는 하나의 공간이 아니라 '구조화된 생각'이었다
입구의 첫 전시공간은 '건축산수'라는 테마에 더 가까웠다. 아크릴, 큐브, 수많은 구조물들이 반복되고 뒤엉키며 건축과 공간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후 안쪽으로 들어가면 '인간산수'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들이 이어진다. 눈에 띄었던 것은 특히 아래 작품들이다:
- <인간의 산>: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복잡한 구조. 사람 하나하나를 쌓아 만든 하나의 거대한 덩어리다. 가까이서 보면 수천 개의 인간 형상이 빼곡하게 얽혀 있다.
- <두 개의 달>: 시간과 관계를 상징하는 해와 달의 구조. 어딘가 몽환적인 느낌이 들었다.
- <인간의 미로>: 사람들의 뇌 구조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느껴졌지만, 생각할수록 ‘삶’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일월오봉도>: 고전 산수화를 재해석한 작품. 중심의 다섯 봉우리는 단순한 산이 아니라 인간 사유의 층위로 읽힌다. 이 설명을 보고 다시 보니, 내면의 무게가 느껴졌다.
3. 왜 이 작품들이 강렬하게 느껴졌을까
나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추게 한 지점들
- (1) 거리에서 본 것과 가까이서 본 것이 완전히 다르다: 멀리서 보면 산수화나 조형물 같지만, 가까이 보면 수천 명의 사람이 응축되어 있다. 그걸 깨닫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감탄보다도 약간의 충격에 가까웠다.
- (2) 질서와 무질서의 경계가 애매하다: 복잡하게 얽힌 선들은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패턴을 이룬다. 이중적인 감정이 생긴다. 나도 이렇게 복잡한 구조 속에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3) 인간 존재에 대한 치열한 질문: ‘왜 이렇게까지?’ 싶은 정도로 집착적으로 표현된 인간 형상들. 수묵화처럼 보이는 작품도 가까이 가면 온통 사람이다. 작가가 말한 "인간은 풍경 속에 살며 길을 묻는 존재"라는 말이 어쩐지 이해됐다.
4. 전시를 좀 더 알차게 즐기려면
다시 가서 더 보고 싶어졌다
나는 이번에 본관만 보고 왔다. 그런데 전시는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어 있었고, 별관에도 흥미로운 작품이 많았다고 한다. 이걸 모르고 온 게 참 아쉬웠다.
- 별관 전시장 위치: 본관 왼편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된다. 다음번에는 전시장 곳곳에 있는 안내 표지판을 꼼꼼히 살펴볼 계획이다.
- 작가 인터뷰나 해설 정보: 작품에 대한 설명이 많지 않아서, 작품마다 QR코드가 있다면 그것도 활용해볼 예정.
- 오프닝 리셉션 공간: 왼쪽 전시실에서는 작가의 자화상과 드로잉, 도록에 사인해주는 공간도 함께 운영되고 있었다. ‘자화상’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 형상은, 수많은 자신을 드러낸 작가의 고백 같았다.
5. 작가 장윤규, 그가 말하는 인간의 의미
인간이란 존재를 미로 속에서 그리다
이 전시는 단순히 조형적 미로를 보여주는 게 아니었다. 작품 전체가 ‘인간의 풍경’이라는 주제를 향하고 있었다.
작가는 단순히 구조물을 쌓은 것이 아니라, 인간 감정과 기억, 무의식을 풍경처럼 표현하고 있었다.
- “감정과 기억, 무의식이 겹겹이 쌓인 풍경 속에서 우리는 길을 잃고, 다시 사유하며 순환한다.”
- “도달이 아닌, 존재와 마주치는 과정이다.”
이런 문장들 덕분에, 작품을 다시 돌아봤을 때 전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을 그저 주체가 아니라 풍경 그 자체로, 관계의 구조로 보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마치며
장윤규 개인전은 미로 속 건축이 아니라, 인간 속 풍경을 걷는 전시였다.
단순히 눈으로 보는 전시가 아니라, 생각하게 만드는 전시. 공간 속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과 감정을 일깨우는 경험이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다음엔 꼭 별관까지 보고 와야겠다. 한 번 봤다고 끝나는 전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두손갤러리에서 길을 잃어보는 이 경험, 나는 다시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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