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우리 집 거실엔 은색으로 반짝이던 묵직한 오디오가 하나 있었다.
볼륨 다이얼을 돌리면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불빛이 켜졌고, 라디오 채널을 맞출 때마다 지지직거리는 잡음이 낯설지 않았다.
그 위엔 늘 같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ANAM’.
그게 그렇게 대단한 브랜드인 줄은 그땐 몰랐다. 그저 결혼할 때 혼수로 꼭 장만해야 하는 물건이었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거실엔 TV와 셋톱박스, 블루투스 스피커가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그 오디오의 로고가 떠올랐다. ‘아남전자는 다 망했지 않나?’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전 한 영상을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 회사는 사라진 게 아니라, 모습만 바꾼 채 더 깊숙이 살아 있었다.
내가 몰랐던 아남전자의 뿌리는 의외로 깊었다
아남의 시작은 오디오 회사가 아니었다. 1970년대 초, 반도체 후공정 사업으로 출발했다는 사실은 솔직히 나도 처음 알았다.
창업주 김향수 회장은 기술력 확보가 기업의 생명이라고 믿었다고 한다.
1973년, 그는 일본 마쓰시타 전기(지금의 파나소닉)와 손잡고 ‘한국 나쇼날 전기’라는 합작회사를 만들었다.
이 선택이 아남의 첫 번째 전환점이었다.
그로부터 불과 1년 뒤, 한국 최초로 컬러 TV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서 컬러 방송이 본격화되기 전이었다.
1975년엔 오디오를 수출하면서 세계 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이후 일본 측 지분을 인수하면서 독립 기업으로 거듭났다.
1980년대 초, ‘아남전기산업’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격적인 내수 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 시절의 아남 오디오는 정말 ‘집의 중심’이었다.
신혼부부들이 가전 매장에 들러 제일 먼저 물어보던 게 “델타 시리즈 있나요?”였고, 부모님 세대는 그걸 집안의 자존심처럼 여겼다.
비슷한 음질의 일본 제품보다 절반 가격이었으니 인기가 없을 수 없었다.
그러나 IMF는 아남에게 너무 가혹했다
아남은 1990년대 들어 TV 사업까지 확장했다.
문제는 그게 ‘과한 확장’이었다. 반도체와 TV 설비에 막대한 투자를 했고, 성장 속도를 유지하려고 차입 경영을 택했다.
그러던 중 1997년, IMF 외환위기가 닥쳤다.
환율이 폭등하고 금리가 치솟자 아남의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무엇보다 TV와 오디오 같은 내구재는 소비가 급감했다.
결국 1999년, 그룹은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내가 기억하는 바로도 그 시절 뉴스에서 “아남 그룹 해체”라는 자막이 자주 나왔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아남은 망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에 있었다.
브랜드는 사라졌지만 기술은 남았다
아남전자는 워크아웃 이후 철저하게 자신을 돌아봤다고 한다.
‘우리가 진짜 잘하는 게 뭐냐’는 질문 끝에 남은 답은 오직 하나였다.
소리를 다루는 기술.
그때부터 아남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다.
더 이상 ‘자체 브랜드’로 시장에 맞설 생각을 버리고, B2B 중심의 ODM 사업으로 전환했다.
쉽게 말해, 유명 브랜드의 오디오를 대신 설계하고 제조하는 방식이다.
하만카돈, JBL, 마란츠, 데논 같은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세계적 오디오 브랜드들이 아남에 주문을 맡겼다.
지금 우리가 백화점이나 온라인에서 ‘하만카돈 리시버’를 산다면, 그 안의 회로 설계와 튜닝을 아남이 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
로고는 사라졌지만, 기술은 여전히 세상 곳곳에서 울리고 있는 셈이다.
베트남에서 다시 태어난 한국의 기술자들
아남은 한국뿐 아니라 베트남에도 대규모 생산기지를 세웠다.
공장을 이전한 이유는 단순한 비용 절감이 아니었다.
글로벌 오디오 시장에서 안정적인 공급망을 확보하려면 그게 필수였기 때문이다.
지금 아남의 공장에서 나오는 제품은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최근엔 새로운 길도 모색하고 있다.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차량용 프리미엄 오디오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고,
AI 스피커나 고급 사운드바 같은 신제품 영역에도 발을 들였다.
그 중심엔 여전히 ‘소리를 만드는 기술자’들이 있다.
브랜드가 아닌 기술로 남겠다는 고집이 지금의 아남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왜 이 이야기에 끌렸을까
아남의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한 인간의 인생처럼 느껴진다.
젊은 시절의 열정, 성공의 환희, IMF라는 쓰라린 실패, 그리고 다시 기술로 살아남은 노년의 관록까지.
눈에 보이는 화려한 브랜드는 사라졌지만, 본질을 붙잡은 기업만이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요즘 ‘겉보다 속’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남전자는 나에게 그걸 다시 일깨워줬다.
언젠가 다시 그 이름이 제품 전면에 새겨질 날이 올지 모르지만,
이미 그들의 기술은 세상 곳곳에서 조용히 울리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들의 손끝에서 조율된 사운드가 흘러나오고 있을 것이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괜히 묘하게 든든해진다.
내가 자란 시절의 그 소리가, 여전히 세상을 채우고 있다는 생각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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