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며
『좋은 불평등』은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불평등이 ‘좋다’니, 처음엔 반감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다 보면 금세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도덕적 감정이나 정치적 구호가 아닌, 데이터와 경제 구조의 변화를 통해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해석한다. 특히 “한국의 불평등은 재벌 탓이 아니라 중국 탓”이라는 문장은 독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
1. ‘불평등=나쁨’이라는 단순한 공식을 깨뜨리다
이 책은 불평등에 대한 기존 인식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저자는 “불평등은 경제 위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경제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한다. 특히 한국의 불평등은 1997년 IMF가 아닌, 1992년 한중수교 이후 시작된 구조적 변화의 결과라고 분석한다.
내가 인상 깊었던 부분은, 불평등의 원인을 ‘재벌’이나 ‘신자유주의’가 아닌 ‘중국의 부상’으로 설명하는 대목이었다. 산업이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저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소득 격차의 뿌리가 형성되었다는 지점이다. 이 관점은 기존 진보 경제학의 주장과 명확히 대비된다.
2. 세 개의 시기로 본 한국 불평등의 흐름
책에서는 한국의 불평등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각 시기는 세계 경제의 변화, 특히 중국의 성장 단계와 맞물린다. 이 구분이 매우 명확해, 복잡한 경제사를 하나의 큰 흐름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1) 1994년: 불평등의 시작
한중수교 이후, 제조업이 값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 옮겨갔다. 부산의 신발, 대구의 섬유 산업이 몰락하며 저숙련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이 시기에 불평등의 씨앗이 뿌려졌다.
(2) 2001~2008년: ‘좋은 불평등’의 시대
중국의 WTO 가입으로 한국의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반도체, 화학, 철강 등 중간재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대기업의 수익이 급증했다. 그 결과, 경제가 좋아질수록 격차가 커지는 역설적 현상이 나타났다. 책에서는 이 시기를 ‘좋은 불평등’이라 정의한다.
(3) 2008년 이후: ‘나쁜 평등’의 시대
세계 금융위기 이후 수출이 둔화되며 상층의 소득이 정체됐다. 하층은 여전히 힘들었고, 상층도 예전처럼 벌지 못했다. 결국 모두가 어려워지며 격차가 줄어든 ‘나쁜 평등’으로 전환되었다.
이 구분을 보고 나니, ‘평등’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 이해되었다. 성장이 멈춘 평등은 모두가 가난해지는 상태라는 점을 저자는 반복해서 강조한다.
3. 정책의 실패는 잘못된 진단에서 시작된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를 분석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시기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비판하며, 왜 실패했는지 구체적으로 짚는다.
가장 큰 오류는 ‘진짜 하층’을 오해한 것이었다. 최저임금 인상 정책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되었지만, 실제로는 노인이 빈곤층의 다수를 차지한다. 즉, 일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임금 인상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부분은 ‘고용 쇼크’ 사례였다.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자, 지불 능력이 없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이 인력을 줄이기 시작했다. 30년 평균 40만 명이던 연평균 취업자 증가율이 2018년에는 9.7만 명까지 떨어졌다. 이 통계는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한 ‘좋은 의도’가 실제로는 일자리 축소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저자는 “불평등 해소는 임금이 아니라 복지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장에 강제로 개입하기보다,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강화해 취약 계층을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4. 앞으로 30년, 우리가 준비해야 할 세 가지 방향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미래를 향한 세 가지 제언이 나온다. 나는 이 부분에서 저자의 현실 감각이 돋보인다고 느꼈다.
① 성장: 산업 경쟁력 유지 -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등 핵심 산업에서 기술 격차를 유지해야 한다. - 성장을 멈추면 분배 자체가 불가능하다.
② 기회의 복원: 교육과 계층 이동의 회복 - 소득보다 중요한 것은 계층 이동의 가능성이다. - 교육과 직업훈련, 지역 균형 발전을 통해 사다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
③ 복지: 노인 빈곤 해소 중심으로 재설계 - 기초연금을 하위 70%에게 일괄 지급하는 대신, 진짜 빈곤층에게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보충연금 체계가 필요하다. - 초고령화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일할 수 없는 사람들의 생계다.
이 제안들은 단순한 복지 논의가 아니라, 한국 경제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현실적 조언에 가깝다.
5. 읽고 나서 든 생각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불평등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바뀌었다. 그동안 ‘불평등=나쁨’이라는 공식을 너무 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불평등을 경제의 ‘결과’로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성장이 멈춘 평등보다, 성장이 있는 불평등이 낫다”는 문장은 오래 남았다. 물론 이 문장이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모두가 가난해지는 평등보다는, 성장 속에서 기회가 열리는 불평등이 더 현실적일지도 모른다.
마치며
『좋은 불평등』은 단순히 경제서를 넘어, 한국 사회를 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한 책이다. 불평등을 도덕이 아니라 구조로 이해하자는 주장, 그리고 복지를 통해 정교하게 완화하자는 현실적 제안이 인상 깊다.
책을 덮고 나면, ‘좋은 불평등’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설득력 있게 들린다. 성장과 분배, 그 어느 하나를 포기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이 책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경제의 좌표를 명확히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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