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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및 부동산/경제 관련

경부고속도로부터 조선소까지, 정주영의 '무리수'가 만든 대한민국

by 코스티COSTI 2025. 7. 16.

시작하며

전쟁과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능력, 그게 정주영이었다. 쌀가게 점원에서 세계 100대 기업 CEO까지, 그의 인생은 무리수로 가득했고, 그 무리수가 결국 나라를 살렸다.

 

1. 가출과 쌀가게, 사업가로서 첫 실패와 깨달음

쌀을 쫓아 경성으로 향했던 1934년

나는 정주영 회장의 첫 도전이 쌀가게였다는 게 인상 깊었다. 1934년, 겨우 20세 무렵의 그가 “쌀 먹다 망하자”는 다짐 하나로 집을 나선 이야기는 요즘 감각으로는 감히 상상도 안 된다. 그 시절은 식민지 시대, 중일전쟁 직전의 만주 이주 붐이 한창일 때였다.

처음 들어간 쌀가게에서 그의 성실함을 눈여겨본 사장이 가게를 통째로 넘긴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기가 쌀 배급제로 바뀌는 전시 통제 시기(1939년)와 겹쳤다는 점이다. 결국 쌀가게는 무너진다.

🚚 실패를 넘어선 선택: 자동차 수리로의 전환

  • 쌀가게 운영 중, 스스로 트럭을 사서 전국을 돌았고 자가 수리를 시작함.
  • 이를 바탕으로 정미소 주인에게 3,000원을 빌려 정비소 창업(1939년경).
  • 하지만 일제의 전시 기업 합병 조치로 또다시 사업이 사라짐.

이 정도면 사업을 접을 법도 한데, 정주영은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게 바로 토건업이다.

 

2. 미군 막사부터 시작된 기회, 현대건설의 태동

전쟁은 재앙이지만, 어떤 이에게는 기회가 된다

해방 후, 정주영은 ‘현대 자동차 공업사’로 사업을 재정비했지만, 본격적인 기회는 6.25 전쟁 때 찾아왔다. 미군 막사 건설을 수주하며 현대 토건이 생긴 것이다. 이걸 계기로 한국전쟁 이후 미군 관련 공사를 독점적으로 따내며, 정부도 그의 능력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 기회를 살린 사업들

  • 미군 막사, 묘지 조성 사업 등 민감한 프로젝트에 대응.
  • 미군이 겨울에 ‘푸른 묘지’를 원하자, 낙동강 보리를 옮겨 심는 기지를 발휘.
  • 한국 정부 주요 건설 사업에도 자연스레 이름을 올리기 시작.

 

3. 경부고속도로, 말도 안 되는 공사를 해내다

“해봤어?” 그 유명한 말의 진짜 의미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를 짓겠다고 선언하자 정주영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하겠다”고 답한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정부는 600억 이상이 들 거라 봤지만, 정주영은 280억 원에 하겠다고 한다.

🔧 실제로 벌어진 일들

  • 정주영이 직접 현장 돌아다니며 관리, 하청 없이 공사 진행.
  • 그러나 공기 단축과 예산 절감 때문에 수많은 문제도 발생:
  • 도로 폭, 두께가 기준 미달
  • 중간에 선로 구분도 없어 역주행 사고 다수
  • 시멘트 비용 아끼지 않고 ‘조강 시멘트’로 터널 완공

⚠️ 공사 당시의 뒷이야기

  • 공식 사망자 수 77명. 안전은 철저하지 못했음.
  • 이후 도로는 전면 보수 필요.
  • 이 모든 리스크에도 정주영은 마진을 포기하고 국가 이미지와 신뢰를 선택했다.

 

4. 조선소 없는 나라에서 배를 팔아오다? 진짜 무리수

조선소도 없이 배를 수주한 현대

영국 은행에서 조선소 자금 8,000만 달러를 빌리기 위해, 정주영은 500원짜리 지폐의 거북선을 보여주며 설득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인데, 실제로 일어났다.

🚢 말이 안 되는 방식으로 조선소와 선박을 동시에 완성

  • 영국에 돈 빌리러 감 → “배 수주 먼저 따오라”는 조건
  • 그리스의 해운업자가 현대에게 26만 톤급 2척을 발주
  • 조선소를 짓는 동시에 배도 만들기 시작
  • 결국 기한 내 납품 성공

이건 진짜 해본 사람만 가능한 무대였다. 대부분의 경영진은 말렸고, 해외 전문가들은 4년은 걸린다 했지만, 정주영은 2년 만에 해냈다.

 

5. 포니의 등장, 현대차는 어떻게 완성됐을까

미국 포드와 결별, 독자 개발의 시작

초기 현대차는 영국 포드의 OEM 형태로 ‘코티나’를 생산했지만, 너무 자주 고장 나는 탓에 소비자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결국 포드와 결별하고, 정주영은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고 선언하며 국산차 포니 개발에 착수한다.

🚗 포니 개발 과정

  • 디자인은 이탈리아의 주지아로에게 외주(120만 달러 지불)
  • 미쓰비시와 협업해 엔진 공급
  • 2년 만에 완성, 1만 대 이상 판매

이후 현대차는 해외 수출, 내수 모두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그룹 전체의 수익 기반이 됐다. 건설이 초석이었다면, 자동차는 현대그룹의 날개였다.

 

마치며

정주영의 삶을 보면 무모함, 집념, 상황 판단력, 그리고 운까지 모두 모여 있다. 그의 가장 놀라운 점은 50대 이후에 더 큰 도전을 했다는 점이다. 당시 기준으로는 정리할 나이였지만, 그는 오히려 전장을 향해 달렸다.

지금도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정주영 회장의 이야기는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 준다. 이 나이에 시작해도 되냐고? 그는 그 나이에 전쟁터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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