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왕관이라 하면 떠오르는 것은 늘 화려한 금관이다. 가지 모양의 장식이 위로 솟아 있고, 금판마다 달개가 주렁주렁 달린 그 모습은 교과서 속 신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이 열리면서, 우리가 알고 있던 ‘왕관의 이미지’가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왕이 쓴 진짜 왕관은 따로 있었다는 것이다.
금관이 왕족의 무덤에서만 나왔던 것은 아니다. 어린이 무덤이나 여성 무덤에서도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왕의 일상용 관은 아니었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졌다. 장례 의식용 혹은 의례용 장식품에 가까웠다는 해석이 힘을 얻었다. 그렇다면 신라의 왕은 실제로 어떤 모자를 쓰고 나라를 다스렸을까.
왕이 평소에 쓴 건 ‘고깔 모양의 모자’였다
경주 금영총에서 발굴된 국보 기마 인물형 토기에 그 단서가 남아 있다. 말 위에 앉은 신라 귀족이 뾰족한 고깔 형태의 모자를 쓰고 있는데, 바로 이것이 ‘모관’이다. 단순히 천으로 만든 모자가 아니라, 신라인들이 신분을 구분하는 상징으로 사용했던 일상적 관모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 모관의 황금 버전, 즉 ‘황금 모관’을 직접 볼 수 있다. 여러 장의 금판을 조합해 만든 모자 위에 하트와 물고기 비늘, 마름모, 티자 모양 등의 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앞부분에는 금으로 된 관 장식을 끼워 넣어 화려함을 더했다. 어떤 것은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하고, 또 다른 것은 나비의 형태를 닮았다.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크지 않다. 안쪽에는 백화수피로 만든 모자가 들어 있고, 그 겉을 금판으로 감싼 형태라 무게를 줄이면서도 견고하다.
일상 속 왕권의 상징이었던 황금 모관
금관총과 천마총에서 각각 출토된 황금 모관은 모두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사이, 마립간 시기의 유물이다. 즉, 왕이 국가의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었던 시기의 상징물이라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모관이 기존 금관처럼 장례용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생활 속에서 착용된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당나라 태자의 무덤 벽화에도 신라인들이 모관을 착용한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는 신라가 이미 국제 교류 속에서 자신들만의 복식 문화를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역사학자들은 이 고깔 모양의 황금 모관을 “진짜 왕관”으로 본다. 왕이 직접 썼던 관이라는 점에서, 의례용 금관보다 훨씬 현실적인 상징성을 지닌다.
1500년을 건너온 황금의 기록
지금까지 발견된 황금 모관은 단 두 점뿐이다. 금관총과 천마총에서 각각 출토된 이 유물들은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황남대총 남분에서는 은으로 만든 모관도 나왔는데, 당시 왕족 사회의 위계와 복식 문화를 짐작하게 한다.
이들 유물은 현재 경주와 서울로 나뉘어 보관 중이라, 한자리에서 볼 기회는 거의 없다. 이번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이 특별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신라의 왕관들이 1,500년 만에 다시 한 공간에 모인 셈이다.
빛나는 금보다 가치 있는 건 시간이다
전시장을 나서며 오래된 금의 반짝임이 쉽게 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금의 화려함보다 더 강하게 남은 것은, 그 안에 스며든 사람들의 손길이었다. 왕이 쓰던 모자였을지, 혹은 그 곁에서 권위를 상징하던 장식이었을지 모르지만, 황금 모관은 지금까지도 신라 왕권의 실체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로 남아 있다.
왕이 썼던 진짜 왕관이 고깔 모양이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지만, 어쩌면 그 단순한 형태 속에 신라가 추구했던 질서와 품격이 그대로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 이 글은 공개 전시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된 일반 교양 콘텐츠이며, 문화유산 해설의 이해를 돕기 위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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