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준비하다가 항공권 가격을 비교해 본 적이 있다면, 요즘 이상한 숫자를 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직항은 200만 원을 훌쩍 넘는데, 옆에 자리한 중국 항공사 환승편은 80만 원대. 처음엔 “이게 실화인가?” 싶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프로모션이 아니다. 지금 한국 하늘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구조적 변화의 신호다.
중국 항공사들이 인천공항을 사실상 ‘환승 거점’으로 점령하기 시작했다. 겉으론 저가 경쟁이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훨씬 더 큰 그림이 있다.
중국 항공사들이 점유율을 뒤집은 순간
2024년 기준으로, 한국과 중국을 잇는 노선에서 중국 항공사의 여객 점유율이 55.8%를 기록했다. 우리 국적사의 44.2%를 처음으로 넘어선 것이다. 단순히 승객이 늘었다는 얘기가 아니다. 인천에서 출발한 승객을 베이징·상하이·광저우로 데려가 유럽이나 미주로 다시 띄우는 ‘환승 모델’이 본격화됐다는 뜻이다.
이 구조의 선두에는 에어차이나와 중국남방항공이 있다. 전자는 베이징을, 후자는 광저우를 중심으로 노선을 촘촘히 짜며, 인천공항을 말 그대로 ‘피더(Feeder) 공항’처럼 활용하고 있다.
반값 항공권의 비밀은 ‘러시아 상공’과 ‘국가 보조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부분의 항공사는 러시아 영공을 우회한다. 그 결과 연료비는 늘고, 비행시간도 2~3시간 더 길어졌다. 하지만 중국 항공사들은 예외다.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여전히 그 길을 자유롭게 통과한다.
비행 거리가 짧아지고, 연료비가 줄어든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이 더해지면, 국적사 직항보다 100만 원 이상 저렴한 ‘반값 항공권’이 가능해진다. 항공업계에서는 이 구간의 손익분기점을 계산조차 어렵다고 말할 정도다. 사실상 정부가 뒷배를 서는 ‘시장 점유율 확보전’에 가깝다.
LCC의 설 자리를 빼앗는 또 다른 파도
그 여파는 저비용항공사(LCC)에 직격탄으로 돌아온다. 원래 LCC의 무기는 “서비스는 단순하지만 가격은 확실히 저렴하다”였다. 그런데 중국 항공사가 국제 장거리 노선을 반값에 깔아 버리니, LCC가 맞설 수 있는 여지가 사라졌다.
결국 LCC의 장거리 진출은 막히고, 국내 항공 산업의 다양성은 점점 줄어드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 항공업계 안팎에서는 “이건 가격 경쟁이 아니라 구조적 압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그 사이에 끼어든 변수
국내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합병 이슈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독점이 심해져 티켓값이 오를까” 걱정하고, 중국 항공사들은 그 공백을 정확히 노렸다.
합병 논란이 불거지는 사이, 초저가 환승 티켓으로 한국 승객을 베이징이나 상하이로 빼내가는 전략. 지금 인천공항 활주로에 내리는 비행기들을 보면, 푸른색보다 붉은색 꼬리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다.
인천공항이 ‘셔틀 공항’이 되는 시나리오
인천공항이 지금의 위상을 지켜온 이유는 명확했다. 동북아 허브로서, 일본과 중국, 동남아 승객들이 인천을 거쳐 유럽과 미주로 환승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가 되고 있다.
한국 승객이 인천에서 출발하지만, 실제 수익은 중국 항공사가 가져간다. 인천은 그저 승객을 중간에서 실어나르는 ‘피더 공항’이 되는 셈이다. 장기적으로는 공항의 경쟁력, 더 나아가 항공 주권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소비자에게 좋은 일일까, 산업에는 독일까
소비자 입장에서만 보면 유혹적이다. 반값 항공권, 넉넉한 여행 예산, 길어진 일정. 하지만 이게 오래갈 수 있을까. 중국 항공사들은 적자를 감수하면서도 시장 점유율 확보에 나서고 있다. 목적은 명확하다. 경쟁자가 사라진 후, 가격을 다시 조정하며 시장을 장악하는 것.
만약 그 시점이 오면, 한국 승객은 선택권을 잃고 중국 환승 루트를 강제로 이용해야 할 수도 있다. 항공산업의 경쟁력은 곧 국가의 이동성과 직결된다. 그래서 지금의 이 싸움은 단순히 항공권 가격 경쟁이 아니라 ‘국가 산업 주도권’의 문제로 봐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냉정한 판단
국적사들의 가격 인상과 합병 불안이 겹친 사이, 중국 항공사들의 속도는 이미 상상을 넘어섰다. 인천공항이 피더 공항으로 전락한다면, 잃게 되는 건 단순한 환승객 숫자가 아니라 한국 항공산업 전체의 기반이다.
유럽이나 미주로 가는 하늘길을 지켜내는 일, 그것은 여행의 편의가 아니라 ‘하늘길 주권’을 지키는 문제다. 지금은 싸게 가는 게 전부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어떤 하늘길을 이용하게 될지, 그 선택권을 남겨두는 일이 더 중요하다.
※ 이 글은 항공 산업 구조 변화에 대한 관찰과 분석을 바탕으로 작성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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